창간호 2026. 01.

불평불만

팥빙수 아브젝시옹

제리 (월간차지 편집부)


포크에 뭘 묻히지 않고 먹기란 너무 힘들고 완수했을 경우에도 이유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정성껏 쪽쪽 빨아버린 커트러리, 음식물이 군데군데 묻은 커트러리. 둘 다 눈물나게 더럽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을 선택한 과거의 나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특히 나는 빙수를 함께 먹는 행위를 몹시 싫어한다. 육칠 년 전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와 단둘이 인사동에서 만난 적이 있다. 좋은 찻집을 알아봐 두었다기에 우리는 계단참을 서너 번 정도 올라 그곳에 도착했다. 그는 메뉴를 꼼꼼하게 훑더니 팥빙수를 시켜서 나누어먹자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나는 그의 취향을 존중하면서도, 나의 예민함을 숨기면서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면서도, 동시에 이 난관을 회피할 방책을 빠르게 마련해냈다.

        “빙수 크기도 쪼끄만한데 1인 1빙수 하시죠 ㅋㅋㅋㅋㅋ”

        그러나 그는 세모눈을 뜨며 빙수가 전혀 쪼끄만하지 않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이었다. 빙수 그릇은 다 먹을 자신이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나의 명백한 실책이었다. 결국 나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짜내어 인생 최초로 나의 고질적인 헤이트를 고백했다.

        저, 사실 빙수 한 그릇으로 나눠먹는 거 싫어해요…
        3…
        2…
        1…

        “지금 내가 더럽다는 거야?”

        아. 이 말을 피하고자 평생을 입다물고 살아왔는데 말이다.

        나는 결벽증 환자가 아니다. 오히려 너저분한 인간에 가깝다. 그러나 이건 조금 다른 영역의 이야기다. 미취학 아동 꼬리표를 간신히 뗐던 90년대 후반, 친구 몇과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중국집에 갔던 날 모든 게 시작됐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내 앞에 앉아있던 연경의 그릇을 봤다. 검은 짜장 국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찰랑거린다니? 짜장은 애초에 전분을 잔뜩 넣어 걸쭉하게 만든 음식이 아닌가. 찰랑 짜장? 훗날 요식업계를 강타한 분자요리 웨이브 내에서나 가능할 형태였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길 없는 현상이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나에게 연경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밀라아제야.”

        아 이런 젠장할. 여덟 살의 나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연경은 이후로도 중국집에 갈 때마다 무서운 일관성으로 짜장면만을 주문했다. 긴 문장을 발화할 때는 몇 번이고 흐릅 소리를 내며 침을 삼키고 손등으로 입을 훔쳤다. 음악수업이 끝난 뒤에는 사용한 리코더를 의식처럼 허공에 털어댔다. ‘아밀라아제’가 후두둑 리코더에서 쏟아졌고 나는 때마다 질끈 눈을 감았다. 나는 연경보다 학급 서열이 조금 낮았으며, 연경에게 제발 침 좀 튀기지 말라 힐난 한 번 하지 못한채 그 시절을 흘려보내야 했다.

        이후 나는 타인의 침과 내 침이 플레이트 위에서 음식을 매개로 섞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며 살아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십여년 쯤 되었을 때, 홍대앞에서 대학 동기들과 술을 실컷 마시고 해장차 배스킨라빈스로 향했을 때 나는 또다시 악몽같은 광경을 마주했다. 연관성 없는 네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이 침과 침으로 누벼진 쿼터 컵. 그 위로 푹 찔러넣고, 돌리고, 휘젓고, 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컵으로 들어가는 대여섯 개의 핑크색 플라스틱 스푼들. 흥건하게 뒤섞이는 레인보우 샤베트와 엄마는 외계인과 아몬드 봉봉, 민트 초콜릿 칩. 내가 그 스푼의 주인들을 사랑하는지 아닌지와는 아무 혐의가 없는 끔찍한 참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비상사태 가운데 최악은 단연코 팥빙수다. 반쯤 녹은 얼음에 자주색 팥물이 스미고, 달그락 소리를 내며 얼음더미 해체를 가속화하는 스테인리스 식기들에는 분명히 제각기의 아밀라아제들이 코팅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의 정돈된 얼음탑은 순식간에 제설작업 덜 된 서울의 아스팔트 꼴로 변태하기 때문에.

       빙수 나눠먹기가 촉발하는 구역질은 다만 위생 문제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동시에 아브젝시옹의 문제일 수 있다. (아브젝시옹이란,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 문학 이론가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내 식기에 발린 침조차 이미 나의 것이 아닐진대, 이 모든 참상들–리코더, 찰랑이는 짜장면, 쿼터 아이스크림, 팥빙수 나눠먹기–은 나라는 개체에서 탈락한 분비물을 맛있는 음식에 묻히고, 그것에 타인의 배설물을 잘 섞고, 그 혼합물을 다시 나의 토출구로 집어넣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그 흐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나는 이 빙수가 내 빙수인지 남의 빙수인지 판단할 수 없는 곤란을 느낀 뒤, 사실상 존재론적 위기에 가까운 멀미를 느낀다.

        타인의 무언가가 내 생활반경에 직접적으로 침범하는 것은 때때로 좋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예외상황은 어디까지나 내가 나로 인식하는 것과 그가 그 자신으로 인식하는 것 사이의 교류일 경우로만 국한된다. 키스가 이러한 공포와 거리가 먼 이유는 구강에서 아직 탈락하지 않은 침들의 교류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타인의 혀에서 이미 진작에 분리된 미세 점액이 내 혀를 침범하는 끔찍한 빙수 사태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친교로 포장하는 모든 사회의 폭력에 반대한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나에게 숟가락을 쥐여주며 함께 빙수를 먹자고 말한다면 나는 그 숟가락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지금 내가 더럽다는 거야?” 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말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 누구도 없는 고요하고 정갈한 찻집에서 흰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빙수를 먹을 것이다.

        1인1빙수 해요~ 제발~~~~~!


막간을 이용한 팥빙수 맛집 추천
🍧수복빵집: 꾸밈없는 얼음보숭이 위에 터프한 계피소스와 팥죽의 조화. 세계 최고의 팥빙수. 약간 사장님 맘대로 장사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방문 당일 영업시간 개별 확인 필수. 최근 ‘전현무계획2’의 영향으로 호젓함은 사라지고 오픈런이 필요한 핫플레이스로 변모했다. (경남 진주시 평안동 촉석로201번길 12-1)
🍧소적두: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팥빙수의 가장 명확한 이상향.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1가 상원6길 8)
🍧금옥당: 위의 이상향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한 버전. (서울시 마포구 어울마당로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