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⓬ 독자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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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돌꽁의 성장일지
김혜림
김돌꽁의 성장일지
김돌꽁은 2025년 7월 20일경에 태어난 잡종 고양이입니다.
인간에게는 생일이라는 것이 참 익숙한 개념이지만, 스트릿 출신의 잡종 고양이에게 정확한 '생일'은 아틀란티스나 미스터리 서클만큼 닿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 없는 인간이 길에서 발견된 잡종 고양이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생월' 정도겠지요. 그러니, 조금 바꿔 말해보자면 김돌꽁은 2025년 7월경 태어난 잡종 고양이입니다.
이마와 등짝에 고등어 질감의 점을 박은 돌꽁은 '점박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 정도로 온 몸에 점이 많은 고양이입니다. 발바닥을 보고 있자면, 거의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는 듯하여 “아 여기가 뉴욕의 현대미술관인가!” 싶은 경탄이 터져 나옵니다. 게다가 돌꽁의 코에도 수묵화 같은 점이 번져 있어요. 오른쪽 아랫 입술과 입천장에도 점 3개 정도를 갖고 있고요. 저는 입속에 있는 점까지는 보지 못하고 돌꽁에게 '돌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점이 많은 고양이에게 '점돌이'라는 이름 다음으로 '돌꽁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점돌이는 너무 뻔하니까, 사실 그건 돌꽁만큼 점이 많은 고양이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이한 이름이라 다들 “왜 돌꽁이냐”고 묻는데요. 이름의 기원... 의미... 같은 것은 없고요. 그냥 무늬가 돌 같고 꽁 같아서 돌꽁이라 지었습니다.
돌꽁은 합정역 부근에 주차된 자동차의 본넷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본넷에서 꺼내진 고양이 치고 아주 활달했다고 하고요, 회색빛을 띄었다고 합니다. 점프력이 지나치게 뛰어난 탓인지 주인을 구할 때 박스 위는 막아두었더라고요. 돌꽁을 원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다들 현실적인 이유 등으로 데려올 수 없을 때, 저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돌꽁을 집에 데려오고야 말았습니다.
조금
섹시하게 점을 자랑하는 김돌꽁
돌꽁을 혹시라도 만날 다른 독자들을 위해 팁을 하나 주자면요. 돌꽁을 만나는 날에는 긴 끈이 치렁거리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돌꽁이라는 황소에게 ‘투우’를 하자며 몸을 새빨갛게 칠하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즉,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돌꽁을 만나면 일단 살점을 숨기십시오. 그는 인간의 살을 무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돌꽁에게 살을 훤히 드러내는 것은, 돌꽁이라는 좀비 앞에서 하우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즉,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저는 ‘음 아기 고양이는 당연히 무니까~’ 했었는데요. 중안부도 길어지고 뱃살도 늘어졌는데 무니까 힘듭니다. 그래도 매일매일, ‘음, 오늘은 어제보다 낫군’ 하고 행복한 마음을 일기에 쓰고 있습니다.
입질, 교육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하라는 건 다해봤습니다. 자리를 피하라고 하는데 자리 피하려고 손 치우면 '와 포르트 다fort-da① 놀이구나' 하고 더 흥분하고요. 아무 반응도 하지 말라고 해서 제 입술에도 점이 생길 정도로 꾸욱.... 참아보면, '어? 이 새끼 이거 참네?' 하고 아주 빵꾸를 내버립니다. 담요로 숨기면 두더지에 빙의해 담요 속을 막 파고들고요. 파고들어서 발견한 손과 다리, 발에는 더더욱 큰 쾌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엄마 이거봐! 내가 발견한 '살점'이야 ㅎㅎ”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이제 잠은 잘 잔다는 것입니다. 물론 새벽 4시쯤 한 번 깨웁니다. 그때는 눈 감고 거실로 내놓습니다. 그러면 한 5분 정도 우왱 우왱 울다가 혼자 놀기 시작합니다. 요즘은 깨우고 나서 내쫓기는 게 익숙해졌는지 울지도 않습니다. 그럼 알아서 나가서 놀고 들어올 것이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정도 지능이라면 절 깨우지 않았겠죠.
늘어난 중안부만큼 신기한 것은 요즘 낚시 놀이를 할 때 공중제비를 도는 횟수가 확실히 줄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돌꽁을 지칠 때까지 놀아줬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때 공중제비 돈 횟수를 셉니다. 몸을 잘 가누게 되어서인지, 예전에는 한 방향으로만 날아다녔는데 요즘에는 공중에서 방향 전환을 합니다. 이러다가 날아가는 게 아닐까 싶을 때 숨을 쇡쇡 몰아쉬면서 잠시 휴식을 취해요. 그때가 되면 점이 번진 코와 이상하리만치 큰 귀가 새빨갛게 변합니다. 이때가 되면 발바닥도 아주 뜨거운데, 뜨거운 발바닥으로 제 얼굴을 밟았다가 제가 화들짝 놀라며 “너무 뜨거운데!”라고 외친 적도 있어요.
아기고양이라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려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고양이도 이런데, 사람 아이는 어떻게 키워내는 것인지, 인간이라는 것도 참 대단한 존재입니다. 얼마 전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저를 가장으로 삼아, 다른 가족 구성원과 생일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돌꽁은 제 초코 케이크를 노렸습니다. 결국 초코 케이크를 바닥에 내뒹굴게 만들고는 발에 살짝 묻은 크림을 핥아먹었죠. 그를 방에 넣어두고 저는 우물쭈물 읊조렸습니다. “그래, 괜찮아. 생일에 정말 재미있는 추억이 생겼다! 너무 즐겁다.”
돌꽁은 저를 그런 존재로 만듭니다. 평소 같으면 기분 나빴을 상황인데도, 좀비 돌꽁이 나를 물어버리려 달려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요. 침대 위에서 휴대폰을 보면 응징하러 찾아오기 때문에, 요즘은 침대에서 ‘잠만 자는’ 사이코패스처럼 살고 있습니다. 알람 소리가 울렸는데도 제가 일어나지 않으면 ‘극대노’ 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루틴을 지켜 살고 있어요.
또, 건강한 아기 고양이가 제게 와주어 너무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황색의 아기 고양이를 한 달 만에 떠나보낸 적이 있는데, 돌꽁은 아마 꾸꾸라는 이름의 그 고양이와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달간 저를 물면서, 꾸꾸가 미처 풀지 못한 놀이 욕망을 푸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꾸꾸와 돌꽁. 겨울의 무언가가 충만히 채워진 느낌입니다. 본가에서 키우던 노견 구름이는 둘을 ‘생명체’라고도 취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구름이는 아주 똑똑하고 예민한 몰티즈였기 때문이죠.
돌꽁과 친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꾸꾸, 그들을 ‘민폐를 많이 끼치는군’이라 생각하며 쳐다봤을 구름이. 꾸꾸는 2019년의 짧은 여름을 살았고, 구름이는 2021년 강아지 별로 떠났다.
돌꽁이 오고 난 이후로, 보일러 비용이 크게 늘었습니다. 집이 따뜻해서, 전기장판도 켜지 않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돌꽁은 데굴데굴 구르는 재미에 사는 것 같습니다.
① 프로이트가 발견한 아이들의 놀이. 프로이트는 실패를 만지작거리던 아이가 실패를 멀리 던지고는 “포르트!”라고 외치고 다시 잡아당겨 손에 잡고는 “다!”라고 외치는 놀이를 즐기는 걸 발견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이 실패가 엄마의 상징물이라고 하더군요. 쉽게 말해 까꿍놀이입니다.